이희헌(李希憲) 1569년에 태어나 1651년에 壽83세로 사망하였다. 대사헌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된 이감(李戡)의 아들로, 어머니는 예천윤씨 연수(延壽)의 딸이다. 자는 가정(可正). 仁祖朝 參昭武原從功臣 一等管 正憲大夫 同知中樞府事 歷 陽川縣令 으로 되어 있습니다.
혹시 맞을 수도 있답니다. 역사를 찾다가 보면 공신(공이 있는 신하들)들에 대해 나온 것들이 있습니다. 그 분야를 찾아보니, 소무공신이란 것이 있었는데, 소무공신은 1627년(인조5년) 이인거가 일으킨 난을 적발한 공으로 책록된 공신 훈호로, 1등은 원주목사 홍보(洪寶), 2등 횡성현감 이탁남(李擢男), 3등은 횡성 유학 진극일(陳克一) 등 6명이 책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이 이름이 전하지 않는 의관(醫官)이라고 한국인의 성씨라는 책에 나와 있더군요. 생몰년이 같다고 하여 다 동일인물은 아닙니다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혹 의관으로 기록된 이희헌이 이 이희헌 방조님일 수도 있습니다. 몇분 예로 들겠습니다. 부사정공파의 예판공 이경항 방조의 경우, 승정원일기를 보니 효종때에도 李慶恒이란 이름을 쓰던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미 예판공은 1643년에 사망하고 예조판서에 증직된 뒤이므로 동일인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전라좌수사 이경여(李慶餘)의 경우는 절충장군 부사직, 용양위부호군을 거쳐 1627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요, 대동보의 기록에도 武科급제 折衝將軍 全羅左道水軍節度使로 기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에 보면, 그가 뒤에 공청도(지금의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고 나오는데요, 1631년에 공청도 수사 재직 도중, 이전에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취중(술을 마심)에 형벌을 집행한 것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 이경여의 경우는 무관직이며, 품계가 같고 직책도 같으며 타문중에 전주이씨 이경여가 있기는 하지만 李景與로써 이름자가 틀리고, 동명이인도 당시 자료에 없었다는 것을 보면, 대동보의 이경여와 동일인물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지요.
........................................................................................ ■ 이석: 내용이 너무 장황하였나 봅니다그려. -[05/14-14:40]-